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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허생전'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야 주인공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속세에서 사라지는 결말에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사회물을 먹은 후에 본 허생은 달랐습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는커녕 매점매석으로 시장을 교란한 경제사범이었습니다. 원재료를 쟁여 두는 행위 자체에는 안정적으로 수급 가능한 시장을 유지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허생은 목표한 거금을 벌겠다는 악의로 벌인 범죄입니다. 도사 대접을 받을 게 아니라 감방에 가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이러나 저러나 한탕주의자일 뿐인 허생들은 너무나 다양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땅 투기나 코인 투기가 아닌 기업을 택한 허생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피해자가 나오게 하는 특색을 지녔습니다. 법인을 설립하거나 투자를 하는 식으로 경영하여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가져가는데, 지속가능성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단중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합니다. 때문에 기업 가치사슬에서 선순환이 보이지 않고 필연적으로 피해자가 발생합니다.

 

Service Value Chain (ITIL) - https://wikidocs.net/82724

웹툰 시장을 보면 걱정스럽기만 했습니다. 잘 나가는 웹툰 플랫폼 기업에서 콘텐트를 공급하는 작가 중에 푼돈만 벌거나 손해만 보는 비중이 너무 큽니다. (아래 기사 참조) 심지어 불법복제로부터 보호 받지도 못합니다. 물론 작가 착취는 큰 문제이지만, 꽤 오랜 기간 불법복제를 방치했던 행위에는 훨씬 큰 시사점이 있었습니다. 직원을 더 고용하거나 관련한 법무법인에 의뢰하지 않는다는 의사결정은 현재 구도로도 경영진 입장에서는 괜찮게 벌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더 이상 노력하기는 귀찮으며 현행유지만 해도 된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가 개인이 말라 죽을 수 있다는 위험은 전혀 감안하지 않는다는 성향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경영행위로, 웹툰 업계에는 아무런 애정이나 사명감이 없으니 업계가 말라죽을 때까지 작가들을 일회용 배터리처럼 갈아 치우며 돈만 뽑아 먹겠다는 메뚜기떼였음을 자백한 셈입니다.

 

웹툰 플랫폼과 작가 계약 그곳은 ‘개미지옥’이었다

[그 후 50년, 여기 다시 전태일들]2부 청년 전태일, 세밀화로 보다 -프리랜서 웹툰 작가들의 삶②‘좁은문’ 너머엔 ‘개미지옥’

www.hani.co.kr

최근에 웹툰 불법복제 웹사이트인 '밤토끼'가 피해작가에게 소액이나마 배상하는 판결을 받았는데, 고소인은 웹툰 플랫폼 기업이 아니라 작가들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협 받을 정도로 극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마감 지키느라 바쁜 작가들이 개인 자격으로 소송을 걸기까지 했다는 점이 웹툰 플랫폼 업체가 얼마나 안일한지 잘 알려줍니다. 웹툰이 올라가자마자 별 시간 차이 없이 불법복제물이 올라오는 상황을 자사의 존폐를 가를 위협으로 보지 않은 것입니다. 경찰, 검찰이 대응하는 수준이 시원찮으면 입법 로비를 하든 방법을 강구해야 할 텐데, 그 많은 투자금을 받아서는 별로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IR 리포트를 예쁘게 만들기만 하는 게 전부가 아니잖습니까.

 

밤토끼, 피해 작가에 배상 판결…업계 '환영'

"웹툰의 창작 가치를 인정한 사례"웹툰 작가 50명쯤이 불법 웹툰 사이트 ‘밤토끼’ 운영진 3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

it.chosun.com

경찰, 검찰도 K든 한류든 뭐든 문화강국으로 강성해야 할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공부 방해하는 만화 태우기 같은 인식을 바꿔 줄 필요가 있습니다. 불법복제 범죄자들이 돈을 버는 광고는 결국 도박, 음란물 쪽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더욱 나서야 합니다. 2018년도에도 불공정계약에 시정조치를 요구했습니다만, 2021년도에도 불공정거래는 여전합니다. 웹툰 플랫폼 기업이 태도를 바꿔 작가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게 할 주제는 소비자보다는 공정위입니다. 웹툰 소비자는 수단이 애매합니다. 불매운동을 하면 지원하고픈 작가가 바로 굶고, 계속 소비를 해도 결국에는 작가가 말라 죽습니다. 작가를 인질로 삼은 웹툰 플랫폼 기업에게 지탄을 할 수는 있어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는 힘듭니다.

 

보도 -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는 26개 웹툰 서비스 사업자가 사용하는 웹툰 연재 계약서를 심사하여 웹툰 작가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10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했다. < 조사 배경 > 최근 웹툰을 서비

www.ftc.go.kr

이제까지 웹툰 시장이 사라지지 않게 한 일등공신은 오로지 작가들이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웹툰 플랫폼 기업이 재주 넘는 곰을 이용하는 뙤놈으로 만족하지 않고, 마이클 잭슨이나 조앤 롤링을 발굴하고 보호하며 육성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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