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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에는 '공처가'라는 어휘가 흔하게 쓰였다. TV 방송에도 코미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오로지 공처가라서 일찍 들어가고 밥 짓고 설겆이 하고 애를 업고 빨래하며 청소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시절이었다. 친구나 동료의 놀림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2015년 현재에도 여성 인권이 무참할 때가 태반인데, 내가 어렸을 적인 팔구십년대는 다들 미쳐 돌아가던 시대였다. 그 시대가 얼마나 정신 나간 시대였냐 하면, 부인 기를 죽여야 결혼생활이 편하다며, 주변 남자들이 새신랑에게 아내가 잘 때 몰래 물을 뿌려 오줌을 싼 걸로 착각하게 하여 협박의 꼬투리를 잡으라는 소재가 TV 프로그램에 자주 나왔다. 눈이 시퍼렇게 멍든 아줌마 서넛[각주:1]이 나와서 푼수짓을 하다 남편에게 눈두덩이를 맞은 얘기를 만담이랍시고 떠들기도 했던 때다.


그런 미친 시대에 아내를 존중하고 가정에 성실했다가는 고고한 척한다고 왕따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당시 공처가 중에는 진짜 애처가가 많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아내가 무서워서 기죽어 산다고 공표해 버리면, 아내를 배려하며 살아도 놀림이나 받지, 마초가 주류인 조직에서 배척은 받지 않게 할 별 수 없는 유용한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벌써 2015년인데 여전히 비뚫어진 면이 많이 남았다. 참 많이 남았다. 겨우 요만큼 바뀌었다. 하루라도 빨리 저런 머리를 쓰지 않고도 편히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1. 웃기라고 여장한 남자 코미디언이 꼭 끼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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