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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300명 구한 일본 경찰 - 간토대지진 학살 100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300명을 구한 일본 가나가와현 쓰루미경찰서장 오카와 쓰네키치가 받은 감사장을 손자 오카와 유타카 씨가 들어 보이고 있다. 감사장은 한문과 한글을 섞어 쓰였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

대지진의 혼란과 공포를 조선인의 학살로 덮다 (1923년)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400900&code=kc_age_40
관동(關東) 대지진 당시 조선인학살 사건은 1923년 9월 2일~6일까지 일본 관동지방 일대에서 일본 군경과 무장한 민중들이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중략)
자료마다 학살자수는 다른데 일본 정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는 발표된 사망자 수 중 가장 적은 233명이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기간지인 『독립신문』에 발표된 학살자 수는 6,661명에 이른다. 사건 후 조선인들이 1923년 10월 ‘재일본 관동지방 이재조선동포 위문반’을 조직하여 11월까지 사망자 수를 조사하였으나 일본 정부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었다. 재난을 당한 조선인들은 구조를 기다리다가 또는 안전한 곳을 찾아다가 만난 경찰과 일본 민중에 의하여 무참한 죽임을 당하였다. 조선인 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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