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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필사를 권하는 글을 종종 봅니다. 성서 필사는 보람찬 일이긴 할 겁니다. 필사 작업 앞뒤로 기도를 함께 한다면 영적인 면에서도 성숙해질 거라 봅니다. 다만, 어지간한 배경지식 없이 성서를 잘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돼지고기가 부정하니 먹지 말라는 레위기 구절을 받아 적으면서 자기 임의로 그냥 피식 웃고 지나가도 될까요?
 
창세기에 나오는 오난과 같이 다소 난감하거나 뜬금없는 이야기가 많은 구약을 피해 신약만 본다고 해도 맥락을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많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무려 성서인데, 사도 바오로는 여자 머리 길이 이야기나 식사 시간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합니다. 남녀가 관계를 갖지 않는 게 좋다고 하다가 결혼은 하는 게 낫다고 하더니 홀아비와 과부는 재혼하지 말라고 하기도 합니다. 복음서는 더합니다. 무화과 나무에 저주를 하거나 칼을 주러 왔다는 구절을 설명 없이 이해할 도리는 없습니다.
 
이런 구절들을 그냥 필사만 하고 지나가서는 지겨운 필사를 끝냈다는 자기만족에만 그칠 위험이 큽니다. 저승에 가서 성서 필사했으니까 천국으로 보내달라는 목적이어서는 더욱 곤란합니다. 부인하지 못할 잔꾀는 연옥에서 헤매는 시간만 늘릴 뿐입니다. 비단 성서 필사만이 아니라 자기 몸을 힘들게 하여 노력은 했다는 식으로 자기 기만을 하는 일은 흔합니다. 나에게든 세상에게든 널리 이로울 일이 없어서 문제일 뿐입니다.
 
성서는 2천 년을 넘긴 옛날 이야기이므로, 강론이나 해설을 보거나 읽고 난 후에 해당하는 성서 구절을 필사하는 식으로, 배경 지식을 먼저 갖추는 방식이 합당하겠습니다. 필사 알바, 필사 숙제처럼 후다닥 해치울 일은 아니잖습니까? 사이비는 절대 피하며 이해하기 좋은 책이나 방송 등을 추천 받길 바랍니다. 뭔가를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고민이 따르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페이스북에 먼저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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