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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 2007-07-25 02:55


 "이게 군대냐? 기숙사냐?"

 제가 군복무를 할 때도 이런 얘기가 흔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들리는 얘기겠지요. 군기라는 게 빠졌다고 생각한 선임자가 많이 쓰는 표현입니다. 임무수행 능력의 미달 때문에 썼다면 수긍할 만합니다만 제 기억에는 군인 본연의 의무와는 무관하게 상하관계가 불분명하다고 선임자들이 느꼈을 때 썼던 때가 많았습니다. 뭉뚱그려 상하관계라고 얘기했는데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막장인지 쉽게 상상하기 힘들 겁니다. 제대하고 '파리대왕'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군대 내무반[각주:1]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군대, 특히 내무반이라는 폐쇄 사회, 아니 오지에 갇혀 사람들이 망가지는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GP에 갇혔다면 몰라도 보통 부대에서 무슨 오지 운운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오지와 다를 바가 없는 걸요. 하루 24시간 움직임을 통제 받으며 같은 구성원과 지내는 환경은, 가끔 크고 작은 배가 지나가는 무인도 같은 고립무원의 오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오지에서는 야만이 사람을 압도하곤 합니다. 갇혔다는 막막함은 빈약한 권력만으로도 부끄러움과 양심이 사그러지게 합니다. 고작 몇 달 먼저 왔다는 걸 핑계로 온갖 추저분한 짓을 자행합니다. 군대 안에서 파리대왕만 만들지 말자는 겁니다. 군대를 무인도로 만들지만 않는다면 지금 군대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놀랄 만큼 줄어들 겁니다. (군대를 없애면 된다는 주장에 답하지는 않겠습니다.)


 때문에 기본적인 외박이나 휴가도 지금보다 많아야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대가 있다는 것은 잘 압니다. 이런 부대에는 IT 지원 등 다른 보상을 좀 더 많이 해서라도 군대 바깥(사회)과의 간극을 메워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도 조직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는 군대와 같은 문제를 보이는 형국이니까요. 예를 들면 고등학교지요. 학교에 학생들이 갇혀있다시피 하니 역시 파리대왕이 곳곳에 있군요. 어른들은 여전히 별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군대가 학교보다 개선하기 쉽습니다. 이런 저런 부정으로 인해 학생을 계도할 만한 귄위가 없는 선생이 어른으로 있는 학교(중고교)에 비해 인사고과에 직접적으로 영향 받는 간부가 어른으로 있는 군대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군대의 폐쇄성을 벗어내려는 노력이 전력을 저하시키지 않겠냐는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도 지속적으로 군복무 기간 단축에 협조하는 만큼(제가 모병제에 찬성하는 건 아닙니다.) 병사를 잡아 두는 건 전력과 크게 상관이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다만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건 속도를 좀 더 내도 좋지 않겠냐는 겁니다. 지금은 불행한 사람이 너무 많아요.

 더불어 국방부는 지금같은 편제로 전쟁할 생각이 없을 거라 봅니다. (물론 당장 누가 미친 척하고 쳐내려 오면, 일단 지금 편제로 해야 혼란이 없겠지요.) 벌써 새로운 편제는 다 서 있지 않습니까? 사사로운 목적으로 병사들 오래 잡아두고 가둬 두는 건 이제 그만 두고[각주:2] 새로운 편제에 맞춰 의무복무기간은 더 단축 시키고 이미 세워둔 보완책을 서둘러 시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인생을 어쩔 수 없이 희생하는 제 후임들을 생각하면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군복무제도가 좀 더 혁신되길 바랍니다. 국방부에서도 적절히 뒷말 없게 공개적으로(이건 아닐 수도 있고요.) 대선후보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길 바랍니다.




■ 이 글의 원래 주소: http://www.mediamob.co.kr/wizmusa/Blog.aspx?ID=162615 (수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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