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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 2008-02-11 03:34

 신자유주의시대의 사회상이 궁금하시다면 카오루 모리의 <엠마>를 권해 드립니다.

엠마 Emma 8 - 10점
카오루 모리 지음/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엠마>는 산업혁명시대의 메이드와 상류층 남자 간 사랑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엠마>의 본편과 작가의 후기에서 언급하듯이 이 시대에는 메이드와 상류층의 사랑 이야기가 인기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TV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재벌과 서민의 사랑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요.

 TV 드라마 시청 시, 머리에 쥐가 나는 증상을 보이는 저조차도 <엠마>는 참 볼 만한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남녀상열지사라는 주된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담담하게 보여주지요. 게다가 산업혁명시대의 참혹한 일면을 선동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절대 피해가지 않습니다. 이런 면이 특히 좋더군요. 작가가 신인인 걸로 아는데 대단한 균형 감각입니다.

 연애 이야기보다 시대상, 특히 앞으로 닥칠 듯 하게 보이는 신자유주의시대의 사회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외전인 8권부터 보셔도 좋겠습니다. 일단의 사랑 이야기는 7권에서 끝나고 8권부터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덕분에 당시의 사회상이 더욱 잘 보입니다. 물론 작가의 균형 감각은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그러고 보니 정작 신자유주의시대의 모습을 산업혁명시대를 통해 보시라는 제안에 대한 근거는 말씀 드리지 못했군요. 제가 생각한 두 시대의 공통점은 계층의 고착입니다. 계층 간 선순환이 불가능해요. 물론 <엠마>의 남자 쪽 집안처럼 귀족은 아니었어도 대를 이어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사례가 있긴 했지만 '작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꽤나 왕따를 당했죠. 그만큼 드물기에 보편적인 사례로서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0%가 아니라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요.

 잠깐만요@ 신자유주의시대에는 작위나 혈통 같은 제약이 없지 않느냐는 반론은 잠시 삼가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산업혁명시대 계층 상승의 숨은 제약은 '교육', 다시 말해 '학벌'입니다. 의무교육은 빈약하고 대학문은 좁았어요. '돈'으로 교육의 기회는 제한되었습니다. 뭘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었기에 그냥 체념하고 살아간 하류층이 태반이었습니다. 때문에 장학금을 빌미로 들며 돈으로 학교에 담을 치는 신자유주의시대를 걱정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그것 대로 말이 안 되죠. 중요한 것은 넉넉한 생존입니다. 굳이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식구들을 느긋이 건사하며 생존할 수 있다면, 어린 나이에는 의무 교육을 받으며 일을 하지 않아도 배를 곯지 않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봅니다. 그런데 산업혁명시대는 그렇지 못했죠. 지금까지 진척을 보여 온 모습과 같다면 신자유주의시대도 똑같을 겁니다.

 실감이 가지 않는다면 <엠마>를 보세요. 그 시대를 살면서 엠마는 왜 괴로워 해야 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화염병과 죽창을 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거지요. 나아가 세상에 대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때 표현하면 더욱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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